박해시대 천주교 신자들이 살았던 교우촌과 공소를 거쳐 박해를 피해 피난을 다니던 길을 따라갑니다.

1802년 40여 명의 신자가 박해를 피해 자리 잡으면서 시작된 신앙 공동체입니다. 1888년 본당으로 설정되었으며 강원도 최초의 성당, 최초의 서양식 벽돌 건물이며 1910년 11월 봉헌되었습니다
병인박해 때부터 피난을 다니던 신자들이 1900년 초 매남이 마을에 자리잡으며 시작되었습니다. 1957년 지금 자리로 옮겨 창촌공소라고 하였습니다. 공소강당은 1993년 건립하였습니다
사기점터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고, 1800년대 박해를 피해 살던 교우들이 이 곳에서 움막을 짓고 살며 시작 되었습니다. 1908년 공소가 설립되었고 지금 건물은 1963년 건립되었습니다
병인박해 때부터 피난을 다니던 신자들이 1900년 초 매남이 마을에 자리잡으며 시작되었습니다. 1957년 지금 자리로 옮겨 창촌공소라고 하였습니다. 공소강당은 1993년 건립하였습니다.
병인박해를 피해온 신자들이 모여 살며 시작되었습니다. 1920년대에는 제법 큰 교우촌이었고 1970년대 까지 유지되었으나 신자들이 풍수원이나 도시로 이사를 떠나고, 리조트가 들어서면서 지금은 사라졌습니다.
간현(艮峴)은 숯돌고개에서 비롯된 지명입니다. 1950년 대에 시작되어 1958년에 첫미사를 드렸습니다. 활발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1980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고, 2019년 건축하였습니다.
1958년 본당이 되었습니다. 당시 성당 건물은 전쟁으로 파괴된 원동성당의 붉은 벽돌을 옮겨와 지었습 니다. 모든 것이 파괴된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이 시작됨을 보여줍니다. 지금 성당은 옛 건물을 바탕으로 2020년에 증축 봉헌한 것입니다.
본래 서지마을은 현재 서지마을에서 산으로 2.7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신자들은 깊은 산속에서 숯을 굽거나 옹기를 만들며 생활하였습니다. 가난과 굶주림을 겪으면서도 기도 하고, 사랑하며 평화롭게 살던 교우들의 마을입니다.
1947년에 설립되었지만, 이 지역은 박해시대에 신자들의 피난길이었습니다, 또 근처 부엉골, 서지마을, 곶당이, 배론등의 교우촌으로 이어집니다. 귀래는 평범하게 왔다가 귀한 사람이 되어 간다는 뜻에서 유래 되었다고 하니, 이 길을 걸으면 우리도 귀한 사람이 되어 도착할 것입니다.
너럴골은 큰 너럭바위가 있어 붙여진 지명으로 배론신학교 집주인 장주기(요셉) 성인이 피난한 곳이고, 대호지는 순교자 지아기(池阿只, 모니카)가 살던 교우촌입니다.
화당리는 곶당이, 꽃댕이라고 불렸습니다. 근처 너럴골과 대호지, 도장골, 안골 등 여러 교우촌에는 많은 신자가 살았습니다. 이곳 출신 순교자도 모두 다섯 분이나 됩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일뿐만 아니라, 피와 땀, 삶으로 하느님과 사람을 사랑하신 사랑의 순교자 이십니다. 묘소 앞에서는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하고, 시복 기도문을 바칩니다
배론은 천주교 원주교구 순례길 <님의 길>의 종착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순례를 마친 이들이 새로운 출발을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순례를 마치신 분들은 미로의 한 가운데에 서서 ‘순례를 마치며 바치는 기도’를 드리고,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었음을 깨달으며 새로운 삶의 순례를 시작합니다.
배론성지와 박달재 사이에 있는 고개, 박해시대 배론에 살던 교우들이 백운화당리와 너럴골 등의 교우촌과 서로 오고 가던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