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 이후 산 위의 등불로, 세상의 빛으로 살았던 교회의 모습을 따라 걷는 길입니다.

금대는 검두라고도 불리는데, 1880년대 중반 박해를 피해온 신자들이 모여 이룬 교우촌입니다. 초기부터 아주 활발하여 1900년 뮈텔 주교님이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건물은 1998년 지어진 것입니다
깊은 계곡, 산 위에 있는 곤의골공소는 1847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니, 원주교구에서 배론, 풍수원, 서지마을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교우촌입니다. 건물은 1925년 지어져 1988년 개축한 것입니다.
1802년 40여 명의 신자가 박해를 피해 자리 잡으면서 시작된 신앙 공동체입니다. 1888년 본당으로 설정되었으며 강원도 최초의 성당, 최초의 서양식 벽돌 건물이며 1910년 11월 봉헌 되었습니다.
1896년 설립 당시 풍수원 본당 주임신부였던 르메르 신부 님은 박해가 끝난 후 교회가 세상의 빛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당시에는 천주교 신자가 4명 밖에 없었던 원주의 가장 중심, 지금의 가톨릭센터 자리의 초가 집을 매입하여 원주성당을 설립하였습니다. 1913년 현재의 성당 자리에 70평의 고딕식 적벽돌 성당을 짓고 이전 하였는데, 한국전쟁 때에 폭격으로 불에 타고 말았습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성당은 1954년에 새로 지은 것 입니다
박해를 피해 피난 온 신자들이 이룬 공소가 성장하여 이루어진 본당입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 공소가 있었는데, 1996년 지금 자리로 옮겼습니다. 2021년부터 새로운 성전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센터는 1968년 '지역사회의 개발과 문화향상에 공헌'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의와 평화, 환경과 생명운동이 시작된 곳입니다.
이 공원은 원주에서 제천으로 가는 길 사이의 치악재를 마주 보고 있습니다. 치악재는 예전에 가리파재라고 불렸는데, ‘가리’는 갈라지다, ‘파’는 고개를 뜻하여 갈라지는 고개, 나누는 고개라는 뜻입니다. 이 순례자 공원에서는 고개를 넘으며 버릴 것은 버리고, 떠나보낼 것은 떠나보내며 새로운 것만 담아 새로운 순례의 여정을 준비합니다.
1898년 초가 경당에 공소가 세워졌고, 1904년 용소막 본당이 설립된 후 현재의 성당과 사제관은 1915년 완공하였 습니다. 6.25전쟁 때 파손되기도 하였으나 복구되어 강원도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지금까지 원주교구에서 가장 아름 다운 성당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배론은 천주교 원주교구 순례길 <님의 길>의 종착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순례를 마친 이들이 새로운 출발을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순례를 마치신 분들은 미로의 한 가운데에 서서 ‘순례를 마치며 바치는 기도’를 드리고,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었음을 깨달으며 새로운 삶의 순례를 시작합니다.
한국 천주교회사의 역사적 사건과 유적을 간직한 곳으로, 구학산과 백운산의 연봉이 둘러싼 계곡 골짜기가 배 밑처럼 생겼다고 하여 배론이라 불리어 졌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을 선택한 한국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화전과 옹기를 구워서 생계를 유지하며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던 곳입니다